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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칠레 시민, 국제행사 엎으면서까지 바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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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8 241

[세계는 지금]칠레 시민, 국제행사 엎으면서까지 바라는 것은?
시위 장기화·격화에 APEC 정상회담 개최 불가 발표
대규모 개각·성장전망 악화에도 ‘개헌하라’ 강경자세

반정부 시위로 몸살을 앓던 칠레가 결국 11월 16~17일로 예정됐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포기했다. 장기화된 시위로 경제 전망도 어두워졌으나, 시위대는 투쟁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10월 30일 대통령궁에서 11월 APEC과 12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 개최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그는 “APEC과 COP가 칠레와 세계에 미치는 중요성을 이해한다”면서도 “대통령은 언제나 국민을 우선시해야 한다”며 국내 정세 안정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칠레에선 이달 초 지하철 요금 인상 발표 이후 수도 산티아고 등지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칠레 성부는 뒤늦은 수습에 나섰다. 지난 22일 연금 20% 인상을 제시한 데 이어 지하철 요금 30페소(약 48원) 인상과 전기요금 9.2% 인상 계획을 철회했고, 10월 28일 대규모 개각을 단행했다.

피녜라 대통령은 이날 내무장관, 재무장관, 노동장관 등 8명의 장관을 경질하고, 신임 장관들을 임명했다. 피녜라 대통령은 개각을 통해 강경파를 몰아내고 변호사인 곤살로 블루멜을 내무장관에, 경제학 교수인 이그나시오 브리오네스를 재무장관에 지명하는 등 젊고 개혁적 성향의 40대 인사들을 내각의 주요 보직에 배치했다.

그러나 대중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특히 시위가 장기화되고 격화되면서, 시위대의 공격으로 지하철역 등 공공장소 기물이 파손되고 약탈 및 교통 마비가 발생하는 등 혼란은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시위 과정에서 지금까지 숨진 사망자만 20명에 이른다.

개각이 발표된 28일 산티아고 도심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며 의류점, 맥도날드 등이 공격을 받았다. 경찰은 시위가 격해지자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 고무탄, 물대포 등을 발사했다. 시위대는 피녜라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산티아고=AP/뉴시스】 10월 30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반정부시위대가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고 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이날 시위로 인한 내부 혼란으로 11월 APEC과 12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 개최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불평등 심화에 뿔난 칠레 시민들, 시위 격화 =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이번에 칠레를 휩싼 소요사태는 고작 지하철 요금 30페소 인상을 계기로 이뤄졌다. 시위대는 단지 지하철 요금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30페소의 요금 인상은 그저 기폭제, 방아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빈부 격차 심화와 공공서비스 부실이 만들어낸 총체적인 사회 구조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칠레는 신자유주의를 내세워 2010년 멕시코에 이어 남미에서 두 번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됐다. 본래대로라면 11월 16~17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및 12월 25차 유엔 기후변화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칠레는 남미 지역에서 발전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민주적인 선거 절차를 확립했고, 시장경제가 주도하는 경제성장으로 남미 지역에서 유엔 인간개발지수(UNHDI)가 가장 높다. 이는 기대수명, 교육, 국민소득 등을 반영한 지수다.

하지만 2017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칠레 인구의 가장 부유한 1%가 전체 재산의 33%를 가져간다. 이는 칠레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불평등한 국가라는 의미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억만장자로, 칠레 최고의 부자 중 하나로 손꼽히며 ‘칠레의 트럼프’라 불리고 있다.


 ●대규모 개각에도 꿈쩍 않는 시위대 ‘개헌’ 요구 = 피녜라 대통령은 시위대를 달래기 위해 10월 26일 각료 전원을 교체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역부족이었다. 10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인터뷰에 응한 칠레 시위대는 80년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벌독재 시절 제정된 현행 헌법이 신자유주의 모델의 근간이라고 보고, 개헌을 요구하고 있다.

칠레의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예시는 연금정책이다. 칠레는 재정악화를 우려하며 연금 민영화를 추진했다. 건강과 교육 시스템에도 사적인 부담을 늘렸다.

칠레에서는 수십만 명이 길면 50대까지 갚아야 하는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고 있다. 많은 칠레인이 전문의의 진료를 받기 위해 1년을 기다리거나, 진료 약속이 잡혔다는 전화를 가족이 죽고 나서 몇 달 뒤에야 받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한다.

알렉시스 모레이라 아레나스(37)와 그의 부인은 중산층이지만 월급의 10%를 개인계좌 형태의 민영연금에 넣고 있다. 평균 연금 수령액은 매달 300달러 수준이며, 이는 은퇴자가 한 달 사는 데 필요한 금액의 3분의 1 수준이다. 나머지 30%는 2세 아들의 사립 유치원 비용으로 들어간다. 그의 부인은 매달 110달러를 학자금 대출로 상환해야 한다.

유치원 교사인 록사나 피사로(52)는 일주일에 7일 일하는 76세 노모를 위해 행진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들은 이 발전한 나라를 남미의 스타 국가로 본다”며 “마천루와 하나에 4000달러짜리 지갑을 파는 고급 쇼핑몰이 있다”면서도 이런 모습이 다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하철 요금 30페소 인상은 낙타의 등을 부러트린 지푸라기였다”며 “기다리는 것도 지쳤다”고 밝혔다.

 ●‘경제 나빠질 것’ 으름장에도 시위대는 코웃음 = 지나친 폭력과 6.0 규모 강진에 규모가 줄기는 했으나, 11월 들어서도 칠레의 반정부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줄지어 내놓는 유화책도 소용없는 모양새다. 결국, 칠레 정부는 시위 때문에 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그나시오 브리오네스 재무장관은 칠레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예정했던 2.6%에서 2~2.2%로 하향조정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그의 발표에 대해 경멸을 표하면서 어차피 자기들은 칠레의 경제적 번영과는 무관한, 혜택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산티아고에서 시위에 나선 교사 마르코스 디아스(51)는 경제성장과 발전의 최대 수혜자는 대기업들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화를 이룩한 지 오래도록 우리는 최저 임금으로 살아왔고 모든 노동자의 60%는 빈곤한계선 아래에서 살고 있다”면서 “경제성장이란 이 나라의 불평등을 은폐하기 위해 고안된 잘못된 모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시위대는 지금 당장엔 경제난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나중의 보상을 위해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들은 1973년 아옌데 정권이 무너진 뒤 1990년까지 군사 독재를 지탱해준 피노체트 쿠데타세력이 제정한 1980년의 헌법을 당장 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문제의 헌법은 모든 사회적 자원과 천연자원, 심지어 수자원까지도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민영화하여 일부 기업의 부를 축적하고 경제 불평등의 원인을 마련했다는 것이 시위 장기화의 한 원인이라고 회계사인 베로니카 곤살레스는 설명했다.

[한국무역신문 제공]